5대 회장 이정선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은 있었지만 회원들의 뜻에 기초하여 부족한 사람이 한국교육인류학회 학회장으로 선출된 데 대하여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존경하는 선배 회원들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후배 회원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학회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길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어느 학회를 막론하고 학회장은 그 학회를 보다 잘 이끌어 가기 위해서 자신이 이끄는 학회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학문 발전에서 그 학회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고, 그 바탕 위에 회원을 통합하고 회원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이해한 우리 학회의 특성을 잠시 정리해 보고 모든 회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서 이를 강화함으로써 학회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학회를 구성케 한 학문의 지적 전통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 주장이 다르긴 해도 어느 학문이건 단순한 논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첫째, 그 분야만의 독특한 주제(theme)가 있어야 한다. 사회학과 심리학이 다른 것은 각각 다루는 주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교육인류학회의 모태가 된 교육인류학 역시 교육학 중에서도 다루는 독특한 중심 주제가 있다. 핵심 주제는 아마 학교문화가 아닐까 한다.
둘째, 그러한 주제를 규명하고 분석하는 데 필요한 이론(theory) 혹은 패러다임(paradigm)이 있어야 한다. 사회과학에서 기존에 개발된 이론이나 관점(perspectives)을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교육인류학 역시 문화를 이해하고 규명하는 나름의 관점이 있다. 여기에는 기존의 전통적 문화 이론이 되었든 아니면 해석적 접근이 되었든,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분야와 구별될 수 있는 그러한 지적 준거의 틀(frame of reference)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특정 학문 나름의 접근법(approach) 혹은 연구방법(research method)이 있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이론을 생성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기존의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교육인류학은 전통적으로 질적 방법에 의존해 왔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학적 성립의 조건에 견주어 보면, 교육인류학을 모태로 만들어진 한국교육인류학회에서 다루는 주제나 관점은 비교적 개방적이다. 거의 모든 교육의 문제, 학교의 문제가 우리의 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며, 거의 모든 사회과학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포함한다. 그러나 특히 접근방법에서 질적 연구라는 공통분모가 우리 학회를 통합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따라서 역시 교육인류학이라는 학문의 주제와 이론의 다양성을 견지하면서도 공통분모인 질적 연구방법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학회 발전을 위해 학회장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다음으로 학회 발전을 위하여 학회장이 해야 할 일은 특정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역시 사람마다 주장은 다르지만 특정 학문이 발전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관련 학문 강좌를 대학에서 가르치거나 연관 학과가 개설되어야 한다. 교육인류학은 연관학과의 개설은 아직 없고 일부 대학에서 독립된 강좌로 가르쳐지지만 그것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질적 방법론과 관련된 강좌가 더 많다. 따라서 우리 학회가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분야이다.
둘째, 연관된 지적 전통을 공유한 지식인의 공동체, 즉 학회가 결성되어야 한다. 한국교육인류학회는 고인이 되신 김영찬 교수님을 중심으로 한 소모임을 모태로 출발하였는데, 현재 회원 300여명인 학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모임을 이끌었던 조용환, 조영달, 유혜령 전임 회장님과 모든 회원님 공로이다. 이런 점에서 학회장의 헌신과 리더십이 더욱 중요하다.
셋째, 지식인 공동체는 단순히 모여서 노는 단체가 아니다. 무언가 지적 생산물을 산출해내야 한다. 그것도 질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때 그 분야 학문이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육인류학회에서 년 4회에 걸쳐 발행하는 <교육인류학연구> 는 발행횟수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학술진흥재단의 등재 후보 학술지로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우수한 수준에 와 있다. 학술지 편집장과 더불어 모든 회원들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다.
이러한 기준에 견주어 보면 한국교육인류학회는 발전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신임학회장이 새롭게 특별히 해야 할 일은 많지 않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격려와 관심을 갖는 일 정도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은 주로 학회를 형성케 한 모태가 되는 학문 발전과 연관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학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학회장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보다 범위를 좁혀 학회 발전의 구체적 조건은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 필요하다. 이 역시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내가 보기에 학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 따라서 회원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학회장이 해야 할 일차적인 일이다. 이를 위해 지회를 결성하는 일도 고려해 볼 수 있고 신규회원 확보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회원이 확보되면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론 공부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학회의 정체성은 학술활동에 있다. 회원간 다양한 활동이나 친목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모두 공부를 위한 부수적인 활동에 불과하다. 따라서 학회장은 회원들이 어디서든 언제든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회가 하는 학술대회와 월례발표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외에도 학회발전을 위하여 학회장이 해야 할 일은 모임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하고, 타 학회와 교류하는 일 등이다. 그리고 학회 구성원의 학적 관심과 장점을 파악하여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일도 학회장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끝으로, 부족한 사람을 한국교육인류학회 학회장으로 선출해 주신 회원 여러분들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만이 보다 발전적인 학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회원 여러분들의 배전의 협조를 기대하면서 회장 인사에 가름한다.
한국교육인류학회장 이정선(광주교육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