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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인사말

9대 회장 류태호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서정주님의 시 자화상의 일부이다. 나에게 한국교육인류학회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바람은 과거형이면서 현재진행형이다. 박사학위과정에 처음 학회에 들어와 만난 회원들이 학문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분들을 닮고 싶었다. 이런 바램이 바람이 되었다. 1대 조용환 회장님부터 8대 조정호 회장님에 이르는 회장님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학회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한다. 지금 9대 회장인 나로서는 전임회장님들의 훈풍이 추위를 녹이고 선풍이 나를 잠들게 한다.

우리 학회는 선진이 후진을 강제하지 않는다. 후진이 선진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로 구하고 아래도 내려주는(上求下化)과정에서 교학상장을 경험한다. 우리 학회는 함께 살아가고(commume) 소통하는(communication) 유기체이다. 규율과 위계가 작동하는 조직체가 아니다. 닫힌 조직이 아닌 열린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의 회원들은 각자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기도 하며, 타인을 비추어 자신을 다시 본다.

우리 학회는 년 8회에 걸쳐 회원들의 자발적인 발표로 세미나가 진행된다. 발표자에겐 학문의 성인식을 치르는 통과의례로 보인다. 회원들은 질문과 답변을 보고 들으면서 연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연구란 다시 찾고, 뒤돌아 찾고, 새로 찾는 것임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 학회의 월례세미나는 학문공동체의 멤버십 트레이닝의 과정이다.

1부 발표가 끝나면 회원들의 자기소개시간이 시작된다. 참여한 모든 회원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진지함과 가벼움이 어울린다.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우리 월례세미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왔다가 가는 그런 세미나를 지양한다. 연구자가 연구의 객이 될 수 없듯이 세미나에 참여한 분들이 주인이 되는 시간이다.

세미나가 끝나면 참여한 분 모두가 음식을 함께 하면서 세미나에서 못다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학문외의 삶의 얘기가 더해진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음식공동체의 시간을 통해 함께 살아가며 소통한다. 하계워크숍은 1박 2일간 회원이 숙식을 같이 하는 연구와 삶을 공유하는 활동이다.

마지막으로 매년 11월 공동학술대회를 연다. 우리의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학회와 함께 한다. 질적연구방법론의 원리를 제공하거나 철학적 배경이 되거나 교육외의 다른 학문영역에서 질적연구를 하는 학회와의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학회의 지평을 확장하는 귀중한 학술대회이다. 깊이와 넓이 그리고 방위를 넓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다른 학회의 거울을 통해 우리 학회를 성찰하는 시간이다. 우리 학회의 1년의 일상은 이러한 활동으로 지속된다. 일상이 깨진 적이 많지 않다. 우리학회의 모토인 ‘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에 흠뻑 젖어 살아왔다. 나에게 멋진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준 우리학회에 감사한다. 우리학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3년 3월 한국교육인류학회장 류태호